[취재수첩] 청춘을 아프게 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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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청춘을 아프게 하는 세상
지난주는 민족 대명절인 추석이었다. 기자는 매년 친가, 외가 모두 제법 가까운 덕에 오전에는 친가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점심이 되기 전 성묘를 다녀온 후에는 외가에서 점심을 먹는다. 몇 해 전부터는 양가 조부모님께 약소한 선물과 용돈을 드리고 있는데 당장의 주머니는 가벼워질지라도 최소한의 도리는 하고 사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든다. 백수시절, 명절은 정말이지 곤욕이었는데 말이다.
외가에서 다같이 모여 식사를 하던 중 어린 시절 가깝게 지냈던 친척동생이 보이지 않아 물었더니 몸이 안좋아서 같이 오지 못했다는 이모의 말에 수년 만에 연락을 해보았다. 2년 전 대학을 졸업한 뒤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알기에 조심스러웠지만 이런 때가 아니면 또 언제 연락을 해보나 싶어 해본 것이다. 연락을 주고받다가 외가에서 혼자 일찍 출발해 30분여 떨어진 동생네 집 앞 카페에서 동생을 만났다. 동생은 카페 구석에 자리를 잡고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었다. 토익 공부 중이라고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생은 신세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취업실업과 관련된 티비 프로그램이나 신문기사가 나오면 관심을 갖고 보곤 했는데 요즘엔 아예 보질 않는다” 청년실업 극복 방법에 대해 고작 눈높이를 낮추라는 조언을 하거나 ‘내 시절에 말이야’라는 식의 어른들의 말들은 조언이라기보다는 사실 꾸지람 같아서 듣기 싫다는 것이었다. 백번 이해가 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사실 4050세대는 대학을 졸업할 때 지금처럼 취업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고 한다. 일부는 3~4개 회사에 중복 합격하기도 했다는 것. 하지만 지금은 서울의 소위 명문대를 졸업해도 취업하기 힘들긴 마찬가지다. 어린시절 그토록 활발한 아이였는데 터벅터벅 걸어가는 뒷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보였다. 축 처진 어깨에 고개 숙인 얼굴, 이 땅의 모든 청춘들의 자화상일 것이다. ‘더도 덜도 말도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옛말이 무색하게도 오는 추석이 반갑고 기다려지기 보다는 부담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취업준비생들은 이제 쉽게 주변에서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 취업정보 포털사이트에서 취업준비생에게 ‘추석연휴 고향방문 여부’에 대해 물은 결과 응답자 중 73%는 연휴 기간 중 취업준비를 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들은 취업을 못한다는 이유 하나로 이 눈치 저 눈치,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불안과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지난 2010년에 만들어진 ‘내 깡패같은 애인’이라는 영화가 생각이 난다. 이 영화는 반지하방에 사는 어설픈 생활형 깡패(?)와 취업준비생 백수 여자의 고군분투를 담고 있다. 영화 속에서 깡패역을 맡은 박중훈은 이렇게 말한다. “청년 실업자가 많은 것은 분명 나라의 잘못인데 왜 자기 자신을 탓하는지, 우리나라의 백수들은 너무 착한 것 같다”고. 성우인 윤소라씨는 청년 세대의 아픔을 공감하는 기성 세대의 속마음을 드러내 네티즌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가 자신의 트위터에 적은 “솔직히 우리 땐 대학만 나오면 대충 취직이 가능했고 재학 시절에도 방학 때만 알바 뛰면 한 학기 등록금이 나왔어. 빈손으로 결혼해도 맞벌이 몇 년이면 집을 살 수 있었고. 어디서 요즘 애들 운운하며 훈계 질이야… 난 정말 기성세대로서 미안해 죽겠는데” 등의 글은 하루만에 8,600건 넘게 리트윗 됐고 상처를 받은 청년 세대를 위로한 글이라는 평도 이어졌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청춘을 아프게 하는 세상이다. 오늘도 여전히 세상과 싸우고 있는 그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해본다. 공혜승 기자 news@kgosi.com <저작권자(c) 한국고시. http://kgos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