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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구리수저’, ‘쇠수저’라도 되기 위해...
201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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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구리수저’, ‘쇠수저’라도 되기 위해...
 
지난해 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태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이러한 사건과 함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단어가 바로 ‘금수저’다. 

최근 정의로운 형사들이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재벌 3세를 검거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내용을 다룬 영화 ‘베테랑’이 큰 인기를 끌고, 연예인 2세가 대중에게 능력을 인정받기도 전에 드라마 주인공을 맡는 등 이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며 또 다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따가워지고 있다. 

이렇게 ‘날 때부터 금수저’라는 말은 흔히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자식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이 표현은 우리 속담이 아니라 서양 문화에서 유래됐다. 영어 숙어 중 하나인 ‘be 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 는 ‘부귀한 집에 태어나다’는 뜻을 갖고 있다. 1800년까지만 해도 실버 스푼을 포함한 은(銀) 식기류는 상류층만 쓸 수 있는 귀한 것이었기에 상류층 가정에 아이가 태어나면 수일 후 치르는 세례식 때 실버 스푼 등과 같은 선물이 들어왔는데, 바로 여기서 위와 같은 표현이 생겨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재벌과 고위층에 대해 유럽귀족의 은수저를 뛰어넘어 금수저로 불리게 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막대한 재산에 권력을 쥐고 태어난 이들에 대한 따가운 시선은 곧 부러움이며, 평생 이루지 못하는 꿈에 대한 자괴감이라 할 수 있다.

금수저의 반대말로 일명 ‘흙수저’라는 단어도 탄생했다. 구리수저나 쇠수저는 어떻게든 광이라도 내서 흉내라도 낼 수 있지만 흙수저는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처지를 말하고 있다. 

문제는 부유층, 즉 금수저가 아닌 모든 계층이 흙수저로 전락하는 우리나라의 상황이다. 재벌 자녀들은 태어나자마자 수백억원 이상의 돈을 상속받고, 취업대란 속에서도 고위층 자녀들은 손쉽게 일자리를 얻는다. 반면 극소수의 금수저를 제외한 대부분이 평생 일해도 내 집 장만은 그저 ‘꿈’이며 청년들은 비싼 등록금 때문에 빚쟁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8월 성인 남녀 810명을 대상으로 ‘본인의 노력으로 계층 상승이 가능하다고 보는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20대의 81%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30대는 무려 94.2%가 같은 취지의 답을 내놨다. 젊은이의 80~90%가 ‘흙수저’, ‘금수저’를 사회현실로 인정하는 셈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청년들은 금수저의 영역이 그나마 적게 미치는 공직에 입문하고자 공무원시험에 몰리고 있다. 모두에게 공정하게 기회가 주어지는 시험을 통해 ‘구리수저’, ‘쇠수저’라도 돼보고자 하는 마음일 것이다. 

기자는 이제껏 종종 청년들의 공무원시험 쏠림 현상을 두고 단지 안정성만을 위해 택하는 이들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과연 비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라는 생각에 미치니 참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한 심정이 든다. 

단지 경제학적 관점, 현 사회 이슈거리로서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현실의 문제를 표현하고 있는 ‘금수저·흙수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되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밥을 제대로 떠먹기 조차 힘든 흙수저에게 ‘구리수저’, ‘쇠수저’ 정도는 쥐어줘야 한다. 

공혜승 기자 news@kgos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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