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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2주년 기획특집] 청춘, 나는 공시생이다 ④ - 그들은 왜 낭인이 될 수밖에 없나
2016-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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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2주년 기획특집] 청춘, 나는 공시생이다 ④

그들은 왜 낭인이 될 수밖에 없나

남미래 기자




“‘취업 3종 세트(학벌, 학점, 토익성적)’였던 때가 호시절이었다.”


최근 청년층 구직자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한탄이다. 3종과 5종을 넘어 어느새 9(3+어학연수, 각종 자격증, 공모전 입상, 인턴 경력, 봉사활동, 성형수술)에까지 이르는 스펙 쌓기가 구직의 기본이 된 탓이다.


올해부터 공공기관과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스펙 전형이 확대되는 추세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구직자들은 많지 않다. 서류 전형 단계에서 자격증이나 어학성적 등의 내용을 기입하도록 하는 기업들이 여전히 많은데다, 구직자들의 태반이 다른 지원자들과 차별화되는 경쟁력을 부각시키기 위해 자기소개서에 인턴 경력이나 봉사활동 경험을 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과 대기업의 스펙 초월 선언에도 불구하고, 스펙 인플레가 해소되기는커녕 도리어 자기소개서를 대필하는 컨설팅 업체가 활개를 치고 있는 이유다.


이처럼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스펙 전쟁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들이 있다.  36만 명에 달하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다. 사기업 취업 시장이 얼어붙고 구직자들 간의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공무원 수험생들의 위기감은 더욱 고조된다. 스펙 인플레가 심화될수록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하는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이들은 많아지고, 공무원 수험과 사기업 취업과의 괴리는 더욱 커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수험생들의 이 같은 우려는 기우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다실제로 지난해 통계청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청년층 취업시험 준비자 중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은 34.9%로 전체 시험 준비분야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8%를 기록한 2014년보다도 6.9%포인트 증가한 결과였다. 특이점은 2014년만 하더라도 25.5%에 달했던 일반기업체 구직자의 비율이 지난해 들어 18.9% 1년 만에 6.6%포인트 감소했다는 점이다. 사기업 구직자 중 일부가 공무원 시험 도전으로 방향을 전환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바늘구멍으로 악명 높은 공무원 시험에 해가 갈수록 더 많은 지원자가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시생의 상당수는 그 배경으로 공무원 시험이야 말로 진정한 무스펙 채용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지난해까지 사기업 취업을 준비하다 올해 1월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9급 수험생 한모(27)씨는 일반 기업체에서는 말로만 스펙 초월 채용이라고 하지, 신입으로 지원하는 구직자들에게 실무경험을 요구하는 얼토당토않은 스펙을 바란다면서 일관성 없는 기준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사기업 취업을 준비하느니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하는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공직사회에 비해 직업안정성이나 복리후생이 열악한 사기업의 현실도 구직자들의 노량진()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삼팔선(38세에 퇴직여부 선택),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 육이오(62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오적)라는 신조어가 횡행하는 민간과 달리, 공직사회에선 비리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정년퇴직 전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퇴직 후에도 공무원연금으로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다


특히, 여성에게 공무원은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부담감을 덜 수 있는 최적의 일자리로 꼽힌다. 지난해 상반기 통계청에서 집계한 경력단절여성 중 임신과 출산, 육아 등의 사유로 퇴직을 한 이들은 54.3%에 달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얻는다는 것은 인생을 건 도박에 뛰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종합격에 당첨되기까지 쏟아야 하는 비용과 시간도 막대하지만, 단지 비용과 시간만 투자한다고 해서 확실히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다. 당장 경쟁률만 하더라도 수백 대 일에 달할 뿐 아니라, 합격선도 그에 비례해 꾸준히 상승세를 타는 추세다


합격자 ○○○명 배출”, “공무원 시험 최다합격 등의 문구로 도배된 학원광고와 미친 듯이 공부하면 되더라는 합격자들의 신화만이 청춘을 담보로 공시판에 뛰어든 이들의 유일한 희망이다.


진짜 문제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야 할 때 시작된다. ‘인생을 위한 투자가 졸지에 마이너스 통장으로 변질되는 순간이다. 짧게는 1, 길게는 4~5년에 이르는 수험 기간 동안 사기업 취업 준비를 동시에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올해 28살이 됐다고 밝힌 공무원 수험생 장모씨는 공무원 시험 과목이 사기업에서 요구하는 스펙과는 거리가 멀고 시험을 준비하면서 다른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거나 인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고 토로했다. 공무원저널이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공무원 시험과 함께 사기업 취업을 함께 준비하는 이들은 8.3%에 불과했고, 공무원 시험 외에 자신의 경쟁력을 드러낼 수 있는 스펙이 전혀 없다고 답한 수험생들은 48,1%에 달했다.


특히 공무원 시험 응시자의 주요 연령층이 장씨와 같은 20~30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 1년에서 5년 이상에까지 이르는 수험기간은 이른바 취업 데드라인으로 불리는 나이제한의 덫으로 인해 불합격자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부채로 돌아온다. , 민간 기업에서 일정 연령 이상의 구직자를 신입으로 채용하길 꺼려하는 것이다. 상당수의 수험생들(65.5%)이 공시 불합격을 실패한 인생으로 등치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채용전문가들은 공시낭인이 양산되고 있는 이유로 불황으로 인한 고용시장의 경색과 양질의 일자리 부족, ‘경력직을 선호하는 기업의 단기적 이윤추구 행태를 꼽는다


채용컨설턴트 김모씨는 기업에 따라서는 면접에서 공무원 시험으로 인한 공백기를 감안해주는 곳도 있지만, 워낙 스펙이 쟁쟁한 구직자들이 많은 상황이기 때문에 다른 지원자에 비해 취업에 불리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최근에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신규 인력을 양성하려하기 보다는 바로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자를 더욱 선호하고 있어 사회경험이나 스펙이 전무한 수험생의 경우 사기업 취업이 더욱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기업들의 교육훈련 축소 등과 같은 단기적 이윤창출 전략은 지속가능한 성장에 도리어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신입직원은 물론, 경력직원들에 대한 기업 차원의 교육 투자를 소홀히 할 경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기술과 경쟁력은 퇴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규 근로자 양성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실제로 유럽연합 중 가장 낮은 청년실업률을 보이고 있는 독일의 경우, 근로자의 직업훈련 촉진을 위해 사업자가 실업자를 신규로 채용해 직업훈련을 실시하는 경우 신입사원훈련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청년 구직자를 노동현장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문제다. 최근 정부도 청년층의 중소기업 취업을 장려하기 위해 만 34세 이하의 근로자가 중소기업에서 3개월 인턴을 마친 뒤 정규직으로 2년 근무하며 300만원을 저축하면 최대 1,200만원의 목돈을 지원하는 청년취업 내일공제제도를 내놓았지만, 중소기업의 근무여건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미봉책에 불과하단 지적이 많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일자리분과위원장 강순희 교수는 청년층은 초기 일자리의 질이 전 생애 일자리 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식하기에 상대적으로 열악한 일자리에 취업하기보다는 필사적으로 괜찮은 일자리에 진입하려 하지만 양질의 일자리 공급과 수요와의 격차가 심한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강 교수는 정부가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될 수 있는 유망 서비스업 육성, 서비스업 선진화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포함하여 청년의 창업 및 창직에 대한 지원을 내실화하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창간 12주년 기획 특집기사청춘나는 공시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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